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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04

 

 

이 소년은 자라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가 됩니다

 

Hermann Hesse

 

 

 

그리고 그는

 

학업의 압박에 허덕이고, 아침잠이 부족해 허덕이고

성장하느라 불행하던 내게 

 다른 문을 하나 열어주었다

 

 

사색

 

 

15살, 처음으로 산 책이 헤세전집이었다는 것이 어쩌면

내 정체성 - 결국 내 운명을 결정했다

 

 

빽빽하고 버겁기만 하던 중학생의 일상에

틈이 벌어지면서 

내면에서 왜? 하고 질문하기도 하고 

아! 혼자 깨닫기도하고

문자로 남아있는 인류의 지혜에 공감할 내적 공간,

다른 차원이 열렸다

 

 

할머니가 가꾸던 화단에는 

늘 봉숭아, 황매화, 다알리아, 작약, 들국, 석류, 나비꽃 등이 피고 지고

벌들이 잉잉 거리고

돌 밑으로 벌레는 기어다녔다

늘.

 

그랬는데 갑자기

 

아름다움으로 인식하는 단계가 열렸고

그건 많은 부분

헤세의 열쇠에 의해서였다 

 

 

공장에서 쏟아져나온 평범한 하드웨어에 미학이 패치된 것이다

 

 

 

'고난기를 사는 친구들에게'

 

 

 

이 암담한 시기에도, 사랑하는 벗들이여

나의 말을 받아들이라

인생을 밝게 여기든 어둡게 여기든 

나는 인생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햇빛과 폭풍우는 

같은 하늘의 다른 표정에 지나지 않는다.

운명은 즐겁든 괴롭든

훌륭한 나의 양식糧食이 되어야 한다

 

구부러진 오솔길을 영혼은 걷는다

그의 말을 읽는 것을 배우라

오늘은 괴로움인 것을

그는 내일이면 은총이라 찬양한다

 

설익은 것만이 죽어간다

다른 것들에게는 신성을 가르치겠다

낮은 곳에서나 높은 곳에서나 

영혼이 깃든 마음을 기르는 최후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자신에게 휴식을 줄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다

 

 

 

 

.

 

 

 

틴에이저이던 내가 많이 좋아했는지

이 시에 조심스럽게 표시가 되어있다

 

무엇이 그렇게 좋았던걸까를 생각하기 전에 

시 제목 위에 정말 조심스러운 볼펜 표시를 보니

이 책을 대하던 마음가짐이 생각난다

성물을 다루는 시골 소녀같은 마음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요즘도 나는 묻곤한다

다시 태어나고 싶은가?

너무 놀랍게도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사람이 없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 몇번이라도

 

그 이유가 바로

저런 것이다

세계와 만나는 첫 순간들,

그 감각

 

 

어떤 경우에도

인생은 살아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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