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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06 이탈리아 관련 블로그에 시간 날 때마다 로마사를 올리고 있는데 이 며칠 그라쿠스Gracchus 형제들의 포스트를 썼다 어려서부터 한국사든 세계사든 역사 과목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글쎄, 생각해보면 서사가 아니라 건조한 기록으로만 느껴졌고(회계 엑셀표같은?) 지나간 일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 경향은 지금도 있다 그래도 이 챕터를 지나면서 그라쿠스라는 특별한 가문과, 두 형제와, 그를 기록하는 역사가의 관점이 보인다 역사가는 자꾸 자신의 양가적 평가를 끌어넣는다 독자에게 객관성을 유지하게 하려는 장치인지는 모르지만 수십년간 함께 사는 사람도 파악하기 힘든 인류라는 종에게 전지적 객관 시점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프리츠 하이켈하임과 세드릭 요 두 사람의 저작이니 누군가의 주장이고 누군가의 .. 더보기
천리향, 라프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천리향 Daphne odora alba (winter daphne) 그리고 라프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Vladimir Ashkenazy (piano) Kirill Kondrashin (conductor)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1963/09 & 10, Walthamstow Assembley Hall, London 안나와 희영이와 함께 살던 아파트 아래층에는 긴 베란다 가득 천리향이 피었다. 봄이 되면 그리고 달이 뜨면 온 세상이 천리향 향기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머리속까지 빼꼭하게 차오르던 꽃 향기 그리고 라프마니노프 더보기
나비꽃 풍접초風蝶草 spider flower 어릴 때 살던 집은 한 면이 모두 창이었는데, 창 밖으로 할머니가 정성 들여 가꾸시던 커다란 꽃밭이 있었다 인품 좋은 할머니를 따르던 동네 분들이 진귀하거나 예쁜 꽃을 보면 할머니께 가져다 주셔서 꽃밭은 갈수록 더욱 풍성해지고, 해마다 새로운 꽃들이 피어났다. 여름에 피어나던 예쁜 나비꽃 - 풍접초, 족두리꽃으로 불리운다는데 할머니께서는 늘 나비꽃이라고 부르셨다 지금 보니 한자명에 나비접자가 있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면 꽃밭에서 흙을 북돋우시거나, 모종을 심거나, 잡초를 뽑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연세가 드시도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할머니의 인생은 신산했다 나쁜 남편을 만났고, 자식을 앗아가는 잔혹한 시대를 사셨고, 경제적으로도 가혹한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할머니.. 더보기
04 이 소년은 자라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가 됩니다 Hermann Hesse 그리고 그는 학업의 압박에 허덕이고, 아침잠이 부족해 허덕이고 성장하느라 불행하던 내게 다른 문을 하나 열어주었다 사색 15살, 처음으로 산 책이 헤세전집이었다는 것이 어쩌면 내 정체성 - 결국 내 운명을 결정했다 빽빽하고 버겁기만 하던 중학생의 일상에 틈이 벌어지면서 내면에서 왜? 하고 질문하기도 하고 아! 혼자 깨닫기도하고 문자로 남아있는 인류의 지혜에 공감할 내적 공간, 다른 차원이 열렸다 할머니가 가꾸던 화단에는 늘 봉숭아, 황매화, 다알리아, 작약, 들국, 석류, 나비꽃 등이 피고 지고 벌들이 잉잉 거리고 돌 밑으로 벌레는 기어다녔다 늘. 그랬는데 갑자기 아름다움으로 인식하는 단계가 열렸고 그건 많은 부분 헤세의 열쇠에.. 더보기
02 왜 미켈란젤로야? 교수가 물었다 왜 안되는데? 그냥 의외라서, 커다란 창을 통해 비스듬하게 빗겨들던 햇빛은 내 등에 닿고, 교수의 파란 눈이 나를 응시했다 보통 동양인들은 레오나르도를 더 좋아하니까 그냥 운명 망치로 뒷머리를 맞은 것 처럼 불식간에 내 존재를 후려친 미켈란젤로 더보기